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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화] 겁화의 춤
서로의 죽음이야말로 가장 적합한 무곡이라 할 수 있다.
백미 2026.07.12.  12:52

 

 

삶은 아름다운 죽음을 위해 존재한다. 죽음은 보다 찬란한 삶을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면 살아가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가? 죽음이 다가온 이는 반드시 찬란한 삶을 살아왔는가? 카시티브는 제 남편이 한낱 장작이 되던 날을 기억한다. 결코 아름답지도, 찬란하지도 않았다. 잿더미가 되는 광경은 볼품없었으며 찬란했던 삶은 그 불꽃에 의해 먹칠되었다. 카시티브는 그 순간 인지만 하고 있던 존재를 엿볼 수 있었다. 희끗한 초록빛…. 그게 이녁의 본질이로구나. 촛불지기는 고개를 돌렸고, 마음 한켠에 증오를 묵힌 채 떠났다.


카시티브는 산자의 비명소리를 따라 걸었다.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환상적인 서커스 천막이었다. 과하게 화려한 간판의 조명이 깜빡거리고, 붉고 하얀 스프라이트 무늬의 주변으로 각종 장식이 꾸며져 있었다. 카시티브는 이런 것도 꽤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가오는 이의 시선을 빼앗는 저 초록빛의 불꽃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햇빛을 주식으로 삼은 녹음의 푸름이 아닌, 생명을 멸절하는 비소(砒素 )의 푸름이었다. 저건 스크릭의 이름을 한 괴물이다. — 아니면, 진작 스크릭이라는 괴물이 ‘신사적인 엔터테이너’를 모방하고 있던 건가?


“단장…. 네놈이 기어이 일을 치렀구나.”


증오. 안타까움. 경멸. 체념.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는 듯 태연한 목소리에 스크릭이 뒤를 돌았다. 잠깐 동안 이어진 둘 사이의 적막이 카시티브의 심정을 대변했다.


“이런, 고귀하신 부인께서 입이 험하시군요.”

“역시 그때 죽여야 했는데.”


하하하하!!! 주욱 찢어진 입에서 흘러나온 호쾌한 웃음소리가 정적을 깬다. 꺼뜨릴 기세가 보이지 않는 불꽃이 좌우로 즐겁게 일렁거렸다. 카시티브는 그 웃음이 가증스러웠다. 본성을 숨기지 못하는 꼴이 짐승과도 다를 바가 없었다. 혹시 이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할 관객이 더 필요하진 않으십니까? 스크릭의 몸이 쩍 벌어졌다. 주변을 기웃대던 불꽃에서 무언가가 쏟아져 내리듯 사람의 형상을 토해낸다. 그 속에는 가장 사랑해마지않던 존재도 있다.

 

“전부 인도해 보시죠, 부인. 부군께서 기다리십니다.”


이지를 잃은 자의 웃음이 허공에 흩어지고, 가누지 못하는 몸이 바닥으로 꺼지고 형성되기를 반복한다. 그것이 기다란 천 자락을 늘어뜨리고 열기의 중심으로부터 일렁였다. 뻐끔. 그것이 입을 달싹거린다. 제 순박한 남편이라면 부인, 저는 괜찮습니다…. 같은 말이나 늘어놓았을 것이다. 멍청하고, 어리석고, 미련하며, 그렇기에 사랑했다. 과거에 살아있어야 했던 존재, 그리고 현재까지도 살아있을 수 있던 망자가 타버린 성대로 기괴하게 울부짖는다. 순리를 거스르며 거꾸로 타오르던 카시티브의 차가운 불이 차츰 천장으로 그 꼬리를 늘어뜨렸다.


“전부 인도해 보라고 하였느냐.”


초록빛으로 타오르던 서커스 천막에 파도처럼 푸르고 노란 불꽃이 밀려 들어오며 제 앞의 죽지 못한 자들을 한입에 먹어 치웠다. 강에서 시작된 문명의 집합체를 죽음의 강으로 돌려보낸다. 부정하지 않는 카시티브의 본질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을 태우고, 또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어 죽음으로 인도하는…. 저들의 순수한 영혼이 모욕당했으니, 감히 산 자가 죽은 자의 이성에 불을 지폈으니, 촛불지기는 재앙의 앞에서 재앙이 되기를 택했다.

냉철함으로 빚어 감정을 채운 그릇에 서서히 금이 간다. 낡은 숄의 끝이 찢기듯 푸르게 타올랐다. 산화된 누군가의 애정 어린 선물이 허공에 먼지처럼 날렸다. 툭, 투둑. 밀랍 가면이 열기에 기괴하게 녹아내려 바닥이 촛농으로 흥건해졌다. 카시티브는 밀랍이 흐르는 것을 굳이 막지 않았다. 장갑으로 붙잡아 고체가 된다 한들 다시 제 몸에 닿으면 웅덩이를 만들 뿐이다.

서로의 등 뒤로 다른 색의 불꽃이 일렁인다.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완벽한 대치였다. 간결하리만치 무심한 박수 소리가 세 번 이어진다. 짝, 짝, 짝. 이거 놀랍군! 과장된 어투로, 양팔을 활짝 벌리며, 더 이상 없는 관객의 흥을 돋우기 위해 크고 작은 동작을 섞어가며 습관적으로 녹아버린 스포트라이트 장치를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마침 좋은 조명이 깔렸군요. 부인께서 진심으로 대하고 계시니, 이 스크릭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겠습니다!”


스크릭은 마치 동의를 구하듯 손을 뻗었다. 상황에 맞지 않는 퍽이나 정중한 자세였다.

 

“한 곡 어떠십니까.”


함께하기를 원치 않는 조력자, 길을 비추어주지 않는 인도자, 멸시하는 대적자…. 통칭할 말은 많았으나 둘은 끝내 서로의 앞길을 막아선 동포로서 마주 보았다.

 

“함께 춤춥시다, 빌어먹을 방화자여! 이 곡이 끝나면 잔불이 될 자가 누구인지 가려지게 될 테니.”

“닥쳐라, 벌레등.“


불꽃에게 규칙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평생 다른 무언가를 게걸스럽게 태우며 살아간다. 약한 불꽃은 다른 불꽃에 삼켜지고, 다시 커다란 화염에 동화된다. 증오하던 둘은 서로를 포식하는 불길이 되고자 했다. 타인은 이해할 수 없는 그들만의 유일한 순리다. 다른 색의 불꽃이 이질적으로 얽혔다. 정박자로 스텝을 밟으며 엇박자로 쏘았다. 고열에 굴하지 않는 밀랍과 빛을 잃은 지팡이가 허공에서 맞부딪쳤다.


두 겁화의 춤이 시작되었다.